Theater Project 극장전(劇場展) 소개

부산국제영화제기간 2009년 10월 9일부터 16일 동안 전국 유일, 부산의 한 오랜 단막극장에서 기획한 극장展 프로젝트의 내용이다.

  • 취지
  1. 기억 속으로 사라질 상징성 있는 공간에서 그와 관련이 있는 미술 전시와 영화 상영을 주최함으로 잊혀져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 역사가 있는 공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유도한다.
  2. 부산국제영화제기간 화려한 축제의 그늘에 가려진 상반된 삼류극장의 씁쓸한 은퇴 준비라는 이미지를 부각하고 자본, 개발논리에 의해 희생되어가는 한국 근현대 역사를 담고 있는 공간, 부산 서민들의 애환을 담은 대중적인 문화공간에 대한 존재감을 부각한다.
  3. 단발적이며 이벤트성 프로젝트 형식의 접근에서 벗어나 같은 맥락에 놓여있는 유사 공간과 사료를 발견하여 단절된 문화의 뿌리를 되찾는 과정을 기록하고 사회적 중요성에 대한 체계적, 지속적인 장기 프로젝트로 이어간다.
  • 목적
  1. 우리주변의 단절된 역사를 인식하고 자본, 개발논리들로 사라져가는 공간에 대한 대안은 없는가 하는 논의 유도
  2. 소외되어 사라져가는 기억, 역사에 대하여 문화유산으로 가치재고
  3. 부산의 도시개발 내에서 보존대상 선정 작업 및 문화적 활용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안하는 시발점으로 전개
  • 행사구성
  1. 영화, 추억, 사라져가는 공간, 자본의 구조들의 내용을 담은 미술작품 전시
  2. 극장과 그 주변을 한 기록한 영화상영
  • 장소 : 부산 동구 범일동 ‘삼성극장'
  • 기간 : 2009년 10월 9일~10월16일
  • 기획: 이은호
  • 진행: 류성효
  • 홍보: 차재근
  • 출판 프로젝트: 권기봉
  • 디자이너: 박정원
  • 참여미술가: 구헌주, 김경화, 김다영, 김다인, 김미애, 김수은, 김승현, 김종철, 나인주, 노동식, 박민지, 박은선, 변대용, 서고운, 성 백, 손몽주, 신무경, 신창용, 오석근, 유미연, 임승천, 임흥순, 정혜련, 조 습, 최원준, 6coin, JunkHouse,

    그룹 '날’(송성진 작가의 제안으로 이루어진 대학생 팀)-강나라, 김다정, 김선주, 김송희, 김유민, 김종흠, 김효영, 명윤희, 심소정, 이고은, 이승아, 이인영, 전다은, 주유림, 한민지

  • 영화상영: 김희진감독의 ‘범일동 블루스' -(상영시간: 12시, 14시, 16시)
               김지곤감독의  '낯선 꿈들' -(상영시간:12시, 14시, 16시)
                             '오후 3시’-(상영시간:11시, 13시, 15시)
  • 차기 프로젝트 준비를 위한 워크샵: 본 행사 이후 진행
  • 후원:
  • 협찬: 
  • The old cinemas have been gradually disappearing since the urban development of multiplex.
  • Of course this is not only a problem with cinema. It is necessary to gain the public’s interest in restoration after sudden urban changes. The purpose of this project is to involve both artists and the often passive public.

Separate the cinema in the exhibition site with different titles of works. Use not only the walls of the cinema but also use on tickets, at entrance, in toilets and lobbies and other suitable spaces. Try to find the memories of theater together with the participation of the artist and people. 

This is one of the cultural events which have been planned to evoke feelings of loss in city life. It is not only for those interested in local community issues; it is about trying to create interest in issues in the wider community. The problem of city spaces is that nowadays they disappear without any trace of their history. 

We are asking for this help because this event is difficult to organize with help from the Ministry of Culture Korean Cultural Art Committee alone. Please consider joining this project as it could be a major historical event.

  • Title: Theater Project-Loss of Memory
  • Place:‘Samsung Theater’ Bumil-dong, Dong-gu Busan Korea
  • Date: 9th. Oct. 2009~ 16th. Oct. 2009
  • Plan Director: Lee Eun-ho  (Independent Art Director, Installation Artist) www.leeeunho.net
  • Programmer: Ru Sung-heo (Director of  Sub Culture Space Agite)
  • Marketing: Cha Jea-kn
  • Artist: 30 artists
  • Show a Movie: 3 Film
  • Support: Ministry of Culture Korean culture art committee (2009 Support Project)
  • Sponsor: Busan bank

삼성극장
부산시 동구 범일동 110-10


삼성극장 이미지


삼성극장 옆으로 도로확장으로 사라져 도로가 된 구 삼일극장의 터


부산 동구 범일동 인근 위성사진


옆 건물에서 내려다 본 삼성극장과 그 풍경, 극장 뒷편으로 확장된 도로를 볼 수 있다.

1959년 개관 당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전국 유일의 극장

부산시는 도로확장을 이유로 기약 없이 철거를 발표

부산시 범일동에는 내 후년이면 헐리고 얼마 뒤면 사라지게 될 '삼성극장'이 있다. 50년 지어져 70~80년대 옛 모습을 느낄 수 있는 전국 유일의 극장이며 그 주변으로는 아직도 추억의 골목이 존재하고 있다. 1959년 개관한 삼성극장은 지금도 영화를 상영하고 있지만, 부산시는 도로확장을 이유로 철거를 발표한 상태다. 이미 1944년 지어진 삼일극장은 지하도로 확장을 위해 2007년 가을 철거가 되었으며, 1955년 개관한 보림극장은 다단계 회사와 마트로 업종을 변경하였다.
부산의 범일동지역의 극장들은 부산지역의 공업화, 산업화와 함께 발전해 왔다. 20~30년대 조선방직을 비롯한 섬유공장들이 있었으며 해방 이후 한국전쟁을 겪고 60-80년대 신발 공장과 고무공장들이 대단위로 존재하였다. 이 주변으로는 학교 및 상업시설들도 밀집되어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들의 수용소로 쓰이면서 현대사 질곡의 현장이기도 했던 이곳은 1970년대 극장쇼가 유행하면서 부흥기를 맞았다. 당시 코미디언 구봉서, 배삼룡, 가수 하춘화 등 당대 일류스타들의 공연으로 부산 공연문화의 중심이었다. 이후 1980년대 보림극장, 삼일극장과 더불어 주머니사정이 가벼운 서민들과 노동자들의 최고 문화의 공간이자 쉼터였다. 점차 비디오의 출현과 인근 진구와 동구, 남구일원에 많던 공단이 외곽으로 이전하고 대형극장들이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재개봉관으로 다시 2편 동시 상영관이 되고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대형 복합상영관에 떠밀려 하루에 50여명도 찾지 않는 곳으로 쇠퇴하게 되었다. 

범일동의 역사
범일동은 오랜 동안 애환을 가진 서민의 주거 지역이었다. 1407년 부산왜관은 처음 오늘날의 범일동 자성대 서북쪽에 있었는데 임진왜란 이후 사라졌다 다시 초량으로 일제 왜관이 옮겨 졌지만 조선시대 부터 범일동은 왜의 수탈의 본거지였다. 1876년 개항 이후 일본인 거주지역이 된 중구와 서구는 일제치하가 되면서 산과 바다로 협소하였던 서면과 범일동 일대를 시가지 확대를 위해 1902~1912년 매축작업을 한다. 철도와 도로, 항만시설이 생겨나면서 범일동 일대는 일제 전진기지가 되었다. 1921년부터 조선방직이라는 거대한 공장이 가동되면서 일제시대 수탈의 표본으로 조선민족애환의 장소이기도하다. 해방 후 전쟁 때는 피난민들의 수용소, 이후 공업화로 이주노동자들이 몰려들었던 범일동은 근대 한국 굴곡의 역사와 함께한 지역이다. 이미 중년을 넘긴 부산의 기성 세대들은 범일동에 대한 추억을 하나쯤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일재 수탈의 흔적, 피난민촌과 인력 시장, 재래 시장과 오래된 극장, 철로변과 복개천 등 아직도 그 흔적이 남아있는 범일동은 한국 역사의 작지만 소중한 부분이다.

범일동 명칭 유래
범일동(凡一洞)은 동구 범6동에서 범4동으로 이어진 계곡 주위로 숲이 우거져 있는 그 계곡의 내를 범내라 했다. 범천(凡川)은 계곡 중간을 흐르는 내를 가리키며, 이를 범내라 부른 것은 이곳 냇가에 때때로 범이 나타났기 때문이라 한다. 오늘날은 범천이라 부르고 있는데, 이는 호랑이를 뜻하는 범이라는 음을 한자에서 빌려 표기하였기 때문이다. 지금의 범내골 시장통에 세워져 있는 "호천석교비"는 범내가 호랑이 내라는 것을 입증해 주는 근거가 되고 있다. 범일동의 서쪽 산비탈은 '널박'이라 불렀다. 널박의 뜻은 이 주변에 민가가 밀집해 있는 상태, 즉 인가가 널리 밀집되어 있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거나, 이곳이 양지인 데다 앞에 있는 바닷물이 반사하여 낮에도 유달리 늘 밝다는 뜻에서 온 것으로 짐작되기도 한다. 인가가 널리 밀집하여 있다는 뜻으로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그 범내 주위로 마을이 형성되자 범천1리 범천2리라 했는데 일제강점 이후 범천1리와 범천2리가 병합될 때 범천1리의 약칭인 범일동(凡一洞)을 동명으로 삼았다. 1959년 시조례에 의해 범일1,2,3,4,5동으로 나누었다가 1970년 범일4동을 4동과 6동으로 분동하였다. 1975년 구역조정으로 범일3동 일부를 남구 문현동에 편입시키는 동시에 일부를 범일2동과 범일5동에 편입시키고 범일3동을 폐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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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고 낮은 곳의 예술

산업사회 이후 영화는 거대한 권력으로 군림하면서 20세기를 매스 커뮤니케이션의 시대로 만드는 데 매우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오늘날까지도 영화는 강력한 흡인력으로 대중을 지배한다. 극장은 영화를 매개로 대중을 직조하는 대중적인 장소이다. 부산 범일동의 삼성극장은 60년대 이후 지금까지도 대중들이 모여드는 공간이다. 그러나 그 공간의 예전과 지금은 다르다. 재개봉이나 동시상영, 성인영화 등의 수식어가 따라 붙는 삼류극장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공간은 시간에 따라 변한다. 사실 극장이라는 물리적 공간의 존재방식은 거의 동일하다. 범일동 일대의 극장가가 이런 식으로 변모한 것은 부산의 도시 생태 변화에 따른 것이다. 흥행가도를 달리던 이 극장이 이리도 초라한 모습으로 쇄락한 데는 자본의 규모와 방식이 변화했기 때문이며, 구도심이 신도심에 중심적 지위를 빼앗겼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더 이상 대중이 찾지 않는 공간, 과거의 기억만이 존재하는 공간은 그래서 영화라는 산업이 얼마나 자본의 논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반증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 전시는 일종의 기억투쟁이다. 잊혀질 것이 뻔해 보이는 마지막 남은 단막극장을 찾아 많은 예술가들과 관객들이 예술적 소통을 시도했다. 그것은 잊혀지기를 강요당하는 상황이나 공간을 잊지 않겠다는 소수자 개인들의 발언이다. 하여 이 전시는 ‘대중(The mass)’이 집결하는 극장이라는 장소에 관한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상황을 문제 삼는 프로젝트로 성립한다. 잊혀질 것이 뻔한 역사를 주섬주섬 주워 모으는 일은 자본의 논리에 따라 사라지는 도시의 역사적 공간에 대한 기억과 상황을 챙기는 일이다. 그것은 사라짐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시민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공간의 소외와 기억의 상실에 저항하는 일이다. 도시의 공간들은 사람들의 쓸모에 따라 흥망성쇠를 거듭한다. 그 변화를 주도하는 것은 자본이다. 예술은 큰 틀에서는 자본과 동행하면서도 지엽적으로 그것과 역행하곤 한다. 자본과의 동행보다는 역행에 예술적 가치를 발견하는 것은 예술이 타율이 아닌 자율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 전시는 도시생태가 변동하는 추이를 예의주시하며 그 속에 참여하고 개입하겠다는 예술적 실천의 신호탄으로 읽힌다.

영화를 극장 상영물이 아닌 전시물로 대할 때는 사뭇 다른 소통 상황이 발생한다. 삼성극장 주변의 범일동의 상황과 사건을 다룬 김희진 감독의 영화 <범일동 블루스>는 텅 빈 극장에서 영화를 감상하는 매력을 제공했다. 출품작들은 낡은 극장의 남루함을 그대로 살려서 오래된 것의 매력을 살려내는가 하면, 도시 자체에 관한 기억을 공간 안으로 끌고 들어오기도 했다. 어두침침한 극장 공간의 한 구석을 차지한 오석근의 성적 이미지나 극장외벽에 그려진 구헌주의 그래피티, 객석에 측광조명을 비춘 임흥순의 작업은 매우 효율적으로 공간의 맥락을 타고 흐른다. 김경화나 나인주 등과 같이 화려한 거대도시의 언저리나 뒷골목의 상황/풍경을 다룬 구작들도 삼성극장의 너저분한 공간에서 새로운 맥락으로 다가왔다. 대부분 기획전들을 위해서 무리수를 두며 신작 강박에 시달리곤 하는 데 비해 이 전시는 구작들을 활용해서 효율성을 높였다. 여러 작가들의 구작을 모아서 공간 성격이나 전시 주제에 맞게 새롭게 맥락화 했다.

이 프로젝트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기간에 열렸다.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이 전시가 보여준 것은 거대한 힘의 논리와 동행하는 영화제의 행보와 반대 방향의 것이었다. 영화제가 부산의 구도심을 버리고 해운대로 행사장을 일원화 한 것은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관객의 동선을 고려한 고육지책이었겠지만, 영화제는 남포동을 버림으로써 부산의 독특한 매력을 함께 버렸다. 그것은 관객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지만, 도시의 역사성과 장소성에 관한 헤아림이 부재했다는 면에서 매우 아쉽다. 그런 점에서 극장전은 퇴행적이다. 영화제의 선택과 달리 쇠락한 곳, 잊혀지는 곳을 찾아 퇴행했기 때문이다. 때때로 퇴행은 과거에 대한 깊은 성찰과 미래 비전을 만드는 밑거름이다. 시각예술이 영화산업과 다른 이유가 여기 있다. 예술적 실천이 낮고 낡은 곳에 머물 때 그 값이 배가한다는 점을 다시 생각한다. -김준기(부산시립미술관 학예사, 미술평론가) * 아트인컬쳐 2009.12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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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ㅜㅜ 삼성극장

이은호

2006년 곧 사라질 ‘삼일극장’과 ‘삼성극장’을 발견하며 학창시절 단막극장의 추억이 ‘시네마 천국‘의 한 장면처럼 스쳐지나갔다. 지금은 찾아 볼 수 없는 단막극장의 아른 한 기억과 측은한 아쉬움이 밀려왔다. 어느 순간 복합상형관의 편리함에 익숙해져버린 나에게 어디서부터 이런 아쉬움을 갖게 되었지 의문을 갖는 것이 프로젝트의 시작이다.

도시 곳곳의 기억들은 지워져가고 각자의 향수와 추억이 담겨 있는 공간들은 흔적도 없이 무참히 밀려 생소한 것들로 채워져 가고 있다. 20년 전 기획자가 자라 왔던 부산의 산동네 골목들은 이미 기억 속에서만 아련하게 남아 사라진지 오래다. 이런 경험은 이 시대를 살아 가는 것은 누구에게나 생소한 것은 아닐 것이며 오히려 익숙하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일제 수탈과 한국 전쟁, 경제발전에 매진하며 우리는 많은 기억을 잊고 살고있다.

이번 기획을 통해 문화적인 대상으로 접근되는 '삼성극장' 못지않게, 근대적인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있는 공간들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물론 보상을 바라며 이곳을 지키고 있는 사장님의 덕인지(?) 다행이도 사라지려면 몇 년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지역의 여론은 이곳을 빠른 시간 내에 철거하였으면 하는 입장이지만 이전 삼일극장 주인이며 현 삼성극장의 주인장은 어떻게 공간을 지킬 것인가 보다는 어떻게 많은 보상을 받을 것인가에 힘쓰고 있는 것 같았다. 오히려 자본과 개발의 논리에 아주 잘 적응하여 강요할 수 없는 난처한 상황이 되었다.

625전쟁 이후, 부산으로 몰려든 이들의 애환의 장소였으며 이 주변으로 일제강점기부터 몰려 있었던 공장 이주노동자들의 쉼터이기도 하였던, 그리고 20년 전까지 부산대중문화의 중심이기도 하였던 여러 세대들의 기억들 간직한 극장에서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조금이나마 기억의 흔적을 되새겼으면 한다.

이야기, 기억이 있는 공간이 흔적도 없이 변한다는 것은 아쉽다. 시대흐름에 따라 보내야 할 것들도 물론 있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극장이 근현대 유물로 남아 추억의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심정이다. 정황상 이 공간은 곧 헐리게 될 것이다. 결국 대세가 그러하다면 따라야 할 것이지만 50년이 넘은 이 공간을 마냥보내기에는 허무하다는 것이다. 경제나 편의, 개발 논리에 의해 사려져가는 한 공간을 보며 억지로 만들 수도 없는 각자의 흔적들을 너무 쉽게 쉬쉬하고 있지 않은가하는 생각이 든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우리네 속담이 있듯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한 공간이 사라지고 변한다 하더라도 예전의 기억과 향수를 간직하고 자본과 편의의 개발 논리에 떠밀려 그것에 생소한 것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네 기억과 얼을 소중이 여기는 스스로가 되기를 희망하는 바다.

욕정의 공간에서 치유의 공간으로

소외, 피해의식, 배제되는 것들.. 그 희망마저 꺾이는 순간 상처가 되고 그 절망은 사회에 대한 분노로 돌변한다. 상처받고 외로운 영혼을 위해 전시를 기획한다.

부산의 남북을 가로지르는 중앙로를 따라 남포동에서 서면으로 이동하다 보면 범일동에서 아주 낡고 허름한 극장을 도로변에서 발견하게 된다. 아직도 이러한 극장이 있다는 것에 놀랍고 버려진 듯 유령들만이 살 것처럼 놓여있는 것이 섬득할 정도이다. 아무도 접근 하지 않을 듯 보이지만 어두운 이면으로 펼쳐진 극장 안 풍경은 묘한 분위기의 사람들이 자기들만의 일들을 한다. 199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이곳 주변으로는 극장이 꽤 있었다. 어느 순간 동네마다 복합상영관들이 들어 서면서 자본의 논리에 대처 하지 못한 또는 도시개발을 이유로 이런 극장들은 사라졌으며 유일하게 홀로 남은 이 50년 넘은 삼류극장은 기약 없이 사라질 날만 기다리고 있다.

자본중심의 사회구조는 대량생산을 위해 공장을 세우고 사회의 톱니바퀴처럼 굴러가는 노동자들로 메운다. 홀로 삭막한 공장들 사이로 무료한 나날을 보내며 욕정을 이겨낼 거리를 찾는다. 인간은 늘 그러하듯 욕망의 덩어리다. 해소 할 곳을 찾아 삼류성인극장으로 모여든 이들은 욕구불만으로 해소 되지 못한 어둠과 함께 그들의 마음을 달랜다. 이들에게는 욕정 해소의 공간이 되어 버린다. 공장이 떠나고 난 그 뒤를 메운 높은 고층 아파트들은 또 다른 외로운 계층을 생산한다. 벽과 벽으로 꽉 가로막힌 아파트의 구조처럼 서로의 맘을 열지 않고 닫혀 서로를 밀치고 있다. 자본이 지배하는 계층간의 이해관계는 배척, 박탈, 소외 등과 같은 감정으로 벽을 세우고 있다. 인간관계에서 깨지고 분리되는 과정, 인간의 낯섦 속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의 외로움을 달래줄 것은 무엇인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소외 받고 있는 현대인들 각자에게 이번 행사는 욕정의 굴레에서 벗어나 새로운 문화적 체험을 통해 사유의 즐거움과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극장주인은 전시가 열리면 주로 이 삼류극장을 이용하는 이들은 한동안 오지 않을 것 이라고 한다. 그들만의 아지트를 빼앗는 순간 그들의 외로움은 어떻게 표출될지 모른다. 하지만 도심 속 삭막한 벽을 걷어내고 욕정의 허무함에서 곧 그들을 포용할 수 있는 영혼치유의 공간으로 변모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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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전 프로젝트는 시작

류성효

'이야기가 있는 공간'에 대한 미술 프로젝트의 영역이 점차 확장되고 있다. 최근 기무사 플랫폼 전시에서 보여 지는 것처럼 금기시 되어 왔던 공간을 미술을 통해 재해석 하는 사회적 접근 방법의 기민함도 최근 경향의 한 축이다. 이러한 프로젝트들은 명료한 정의를 기반으로 풀어내기 어렵거나 조심스러운 대상을 이미지 해석의 가변성을 통해 작품의 의도와 관람자의 개념 대입이 다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부산의 최근 모습을 관찰하고 있으면 한국의 여타도시와 비슷하겠지만 토건주의적 발상에 입각한 물리적 증축(?)을 발전 모델로 삼고 있는 근시대적 사고의 결정이 반복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물론 도시발전 계획의 과정상 개발이 토건적 베이스를 기반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은 상황에 의해 인정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중심으로 작용할 경우 우려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근시안적으로 이루어지는 성과 중심, 민원의 불편해소, 경제논리로 추진되는 많은 사업들을 지켜보면서 그 사업의 이면에 무시되고 치부된 그 ‘무엇’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목소리를 찾게 되는 과정을 겪었다.

최근 인천에서 있었던 ‘배다리를 지키는 인천시민모임’의 활동 기록을 찾아보면서 성장지상주의의 풍토가 아직도 지배적인 시기에 역사의 흔적을 그 논리에서 보호하고자 하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움직임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번 극장전의 무대가 되는 삼성극장은 인천의 배다리와는 다른 부분이 많다. 그리고 이미 병목현상 해소를 위한 도로확장을 위해 오래전부터 철거가 예정되어져 있던 곳이고, 주변에 있는 몇 채의 건물을 제외하고는 현재 철거가 완료된 상황이다. 그리고 2009년 3월 31일자 부산일보의 기사를 보게 되면 주민들의 요청에 의해 범일동 도로 확장공사가 시급하다는 내용이 실렸다.

극정전 프로젝트는 부산의 현대사와 함께 한 범일동 극장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삼성극장을 보전하자는 발언을 직접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보전의 가치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보전이 궁극적인 목적이 되는 방향으로 접근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말한다. 또한 논리적인 측면에서 리노베이션과 같은 과정을 거쳐 공간의 재활용하자는 논리가 시민들의 불편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비교적 접근을 선행하지 않았다는 말도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극장전 프로젝트는 아주 중요한 ‘발언’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부산을 떠나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행사로 자리 잡은 부산국제영화제가 매년 10월에 개최되고 있다. 영화제가 진행되는 시기에 많은 부산 시민들은 의례히 상영관이 있는 남포동 극장가 일대와 해운대로 자연스럽게 발길을 옮긴다. 영화산업 진흥을 위해 애쓰고 있는 소식들을 접하면서 이제 영화제가 열리는 도시로서만이 아닌 진정한 영화도시로서의 부산에 대한 기대도 영화제 시기에는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는 듯하다. 그러나 화려하게 진행되고 있는 영화제가 부산을 대표하고 있는 순간에 부산의 영화문화를 대변할 수 있는 극장은 쓸쓸하게 퇴장을 준비하고 있다. 한때 인기선수였지만 퇴물로 전락했다가 아무도 모르게 은퇴해버리는 노년의 퇴장보다 눈물 나는 장면이 사실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범일동 일대는 부산의 산업화와 함께 공장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 엄청난 유동인구를 확보하고 있던 지역이었다. 돈벌이를 위해 타지에서 온 사람들, 생계를 위해 고된 일상을 견디고 있는 사람들, 부유하지 않지만 미래를 위해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들의 터전이었다. 그 시기, 문화생활이라는 개념도 낯선 시기에 영화는 그들이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최고의 방법 중 하나였다. 주변 어른들의 입에서 어렵지 않게 청춘의 한 페이지에 자리 잡은 그 공간에서의 추억이 아직도 선하게 남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때 조용필 쇼가 열릴 정도로 영화뿐만 아니라 공연 공간으로서의 역할 또한 든든하게 담당했던 범일동 극장들의 화려한 과거를 이제 누가 기억해 줄 것인지에 대한 기약도 없이 어느새 보림극장과 삼일극장이 사라졌다. 어느새 1950년대 이전 지어진 극장 중 그 형태를 온전히 간직한 채 남아 있는 곳이 부산의 범일동 삼성극장 단 한곳만 남았다. 굴곡진 한국 근현대사의 수많은 사건들이 있었던 파란만장한 그 공간들과 그 이야기들은 이제 어떤 방법으로 부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말을 건넬 것인가?

극장전 프로젝트는 단순히 퇴장을 준비하고 있는 노장, 낡고 닳은 삼성극장의 퇴장을 치장해 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최근 일상적으로 주고받는 말이 되어 버린 ‘경제위기’, ‘경제발전’이라는 화두 아래 어느새 잊혀진 그 ‘무엇’을 다시 사람들에게 환기시키는 역할을 하고자 한다. 삼성극장을 보전하자는 말 보다는 우리가 잊고 있던 것 중에 우리가 정말 잃어서는 안 되는 그 ‘무엇’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해 보고자 한다. 전시는 안정된 화이트 큐브를 떠나 이슈가 되는 공간으로 자리를 옮기는 효과적인 전략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이 차마 꺼내지 못한 이야기들을 발굴하고, 편견에 묻혀 있던 상징과 이미지를 재해석하는 노력의 방법으로 선택되었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 작가들은 기존 작품의 진행 코드에서의 결합, 전시 대상을 주제로 접근한 프로젝트로서의 결합, 기록적 접근을 통한 결합 등 다양한 방법으로의 결합을 꾀하고 있다. 또한 사라져 가는 극장이라는 공간, 성장지상주의 세태, 성 소수자들의 아지트라는 이미지 등을 보다 구체적이거나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기 위한 장치들을 곳곳에 설정한다. 엔틱을 넘어 그로테스크한 느낌까지 드는 공간과 소품이 전시를 통해 더욱 두드러지는, 그래서 크게 한 덩어리처럼 향수와 이미지의 홍수를 만들어내는 특별한 경험이 관객에게 제공된다. 전시 기간 중 범일동을 무대로 제작된 단편영화 ‘범일동 블루스’가 상영되며, 범일동 극장들(보림극장, 삼일극장, 삼성극장)의 역사와 의미를 기록한 다큐멘터리도 상영된다. 출판 프로젝트는 저자의 이전 저서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서울의 역사를 만나다’처럼 부산을 거닐며 부산의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게 해 주는 가이드를 자청하고 있으며, 또한 사라져가는 공간이 사라지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호소해 사라지지 않을 수 있는 계기로까지 발전되기를 기원할 것이다.

이슈화될 수 있는 공간을 대상으로 접근하는 프로젝트는 그 중압감에 의해 너무 무겁거나 너무 일반화될 수 있는 어려움을 감내해야 한다. 대상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과 함께 하기 위한 준비는 물론 프로젝트 이후 일관되게 프로젝트 생성의 동기를 확인하고 실천해야 하는 과제도 있다. 극장전 프로젝트는 긴 여정의 출발을 알리는 선언 같은 프로젝트로 생각해도 무방하다. 극장전 프로젝트를 준비한 프로젝트 팀의 가치를 확인함과 동시에 물론 극장전 프로젝트를 통해 또 다른 프로젝트의 출현을 기대하는 호소와 선동이 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함께한 이들에게

처음 이곳에서의 기획을 할 당시 순조롭게 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을 받으며 시작하였지만 전시가 임박한 시점 갑작스럽게 여러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기획자 내부의 문제, 가장 많은 예산을 후원을 하기로 한 업체의 잠적, 예산의 과반을 차지하는 막대한 대관비의 부담을 안고 철회나 축소 대한 고민까지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프로젝트의 일정 부분과 홍보가 된 상태라 진행은 불가피하였습니다.

외벽 벽화 준비과정 중 인명 사상자가 나면서 보상 문제로 법적 공방까지 가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언제 사라질지도 모를 극장을 바라보며 3년간 진행하여 온 계획을 중단할 수 없었습니다. 참여한 작가들과 기획단에게 내색 할 수 없었던 상황을 이글을 빌려 사과를 구합니다. 기획자의 부족함으로 아쉬움이 많은 전시이지만 이번을 계기로 반면 많은 것을 배우는 전시였습니다.

사람들은 이 전시로 인해 무엇을 얻었냐고 묻습니다. 아직 매듭지어지지 않은 상황에 그 답은 힘들기만 합니다. 그렇지만 함께한 이들과 주변의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생각의 시간을 갖는 것만으로도 큰 것을 얻었다고 말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기사나 인터넷 블러거들의 후기를 읽으며 여러 의견을 들을 수 있었고 공감과 소통의 통로가 되었다는 것, 힘든 과정 중에서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물신을 함께 해주신 부모님, 아무런 대가도 없이 기획에 참여한 류성효, 차재근, 성백, 구헌주, 박정원에 대한 신뢰와 믿음은 이번 전시에서 큰 힘이 되었고 연대를 통해 앞으로의 가능성을 찾았습니다. 또한 전시에 함께 하여 주신 작가분들께 많은 지원 못한 점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이외 일일이 이름을 나열 하지 못한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이은호